[김진영 목사님 설교문] 비우고, 버림으로 온전하게 되는 믿음
by 김진영목사님 |
17.03.1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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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버림으로 온전하게 되는 믿음
성경; 사도행전 2;1-4, 누가복음 14;25-35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신 다음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을 뒤따르든 무리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께서 그들에게 뜨겁게 임하심으로 그들은 모두 능력을 받았습니다. 능력을 받은 그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가 된 그들의 삶의 모습을 사도행전 2;43-47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므로 물질로부터 자유 함을 얻어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된모습입니다. 특히 바나바라고도 하는 요셉이 자기소유의 밭을 팔아 교회 공동체에 헌납함으로 인해, 버리고, 비우는 일이 더욱 확대되어 갔습니다. 그런대 초대교회에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 첫 번째 닥친 시련은 물질의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 일부는 자기들을 위해서 감추어 두고 나머지를 전부라고 속여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을 속인 죄 때문에 그들은 사도의 발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두 번째의 시련도 역시 물질의 문제였습니다. 사도행전6;1절의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 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 파 사람을 원망한대’라는 말씀에 나타난 대로 교회 안에서 구제의 문제, 즉 물질의 문제로 헬라 파 과부들이 사도들에 대하여 원망을 했습니다. 사도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에게는 필요한 물질로 잘 도와주면서 헬라 파 과부들에게는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새로운 일꾼으로 일곱 집사를 세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등, 과부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물질로 인한 문제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집에 가셨을 때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마태복음 26;8-9절에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마리아에게 분을 내며 책망을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 같지만 속마음은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 하시면서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여인을 책망한 제자의 이름을 가룟 유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6절에는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끝내 물질의욕심에 빠져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아 넘겨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많이 부딪치는 유혹은 권력과 명예 그리고 이성과 마약 입니다. 이러한 유혹은 모두 물질과 연관이 있으며 욕심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 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권력과 명예와 그외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주님 안에서 참 자유를 얻게 될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우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단은 제일먼저 경제문제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40일간의 금식으로 주리신 예수님에게 사단은 돌들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하지만 명확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일시적인 경제적 풍요 보다 더욱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와 영원이란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의 시험은 섬김을 받고자 하는 권력문제였습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 내리라고 했습니다. 뛰어 내리면 하나님께서 사자들에게 명령하셔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천사들로부터 섬김을 받을 수 있는 권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의 유혹은 선택에 대한 유혹이었습니다. 마귀가 지극히 높은 산에서 천하만국과 영광을 예수님께 보여 주면서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을 했습니다. 화려한 세상나라의 영광을 택할 것인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하나님 나라를 택할 것인가? 의 선택에 대한 혹이었습니다. 세상나라의 선택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거나 비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이던 아무런 문제가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택하면 십자가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우지 않으면 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콤한 세상나라의 유혹을 과감하게 물리치시고 하나님나라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것을 본문 26절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 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 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도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버려야 온전한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는 주님의 제자된 한 사람이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먼저 자기 가족들과 작별을 한 다음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대답 하셨습니다. (눅9;59-62)
마태복음 19장에는 부자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부자 청년에게 그의 재산을 다 포기하고 나를 따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재산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을 놓지 못해, 버리고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버릴 것과 쥐고 있을것을 올바로 분별해야합니다. 교만과 자아와 욕심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놓지 말고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비우고 버림을 통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75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정든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 하시는 땅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100세가 되든 해에 외아들 이삭을 낳게 되어 큰 기쁨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절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100세에 낳은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외아들 이삭을 바치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12절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리고 16-18절에는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 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은 그가 가진 것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고 난 후 자기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비우고 가진 것을 모두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넘치는 복과 은혜와 믿음을 채워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이었지만 이집트의 궁중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모세는 왕자로써의 모든 권위와 영화를 버리고 미디안으로 갔습니다.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마지막 남은 신발까지 벗고 난 다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도 세상적인 생각을 비우고 손에 쥐고 있든 모든 권위와 영광을 버림으로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의 지도자로 택함 받게 되었든 것입니다.
제가 73년도에 인도네시아의 원목을 일본으로 운송하는 외항선을 승선했었습니다. 보르네오의 폰티악 항구에서 원목을 적제하기 위해 정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원주민들이 귀여운 원숭이를 선원들에게 팔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그 원숭이들을 어떻게 잡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곳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는 방법은 큰 나무나 바위 틈 사이에 있는 작은 구멍을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원숭이의 빈손이 겨우 들어 갈만한 구멍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딴딴한 과일이나 당근을 넣어 두면 그것을 꺼내려고 손을 넣어 그 과일을 움켜쥔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을 빼려고 하면 움켜쥔 손이 빠지지를 않습니다. 원숭이는 사람들이 가까이와도 손에 잡고 있는 그과일을 놓지 않기 때문에 구멍 속에 넣은 손을 빼지 못하고 있는 원숭이를 잡을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잡힌 원숭이는 동물원이나 혹은 어느 사람의 집에서 놀림을 당하고 구경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원숭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그럴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앞에 여러 가지 유혹의 올무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유혹이나 권력의 유혹이 있습니다. 선택에 대한 강요를 받습니다. 영혼을 흔들만한 유혹이며 육신이 빠져 들 만한 그런 유혹입니다. 잘 나갔든 과거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자존심만을 고집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명예를 얻게 만듭니다. 모든 것이 자기의 뜻대로 되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사탄의 올무를 벗어나야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멍 속에 손을 넣어 과일을 움켜쥐고 있는 원숭이도 손을 펴서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면 자유로워 질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손에 잡고 있는 교만과 자아를 버려야 합니다. 권세를 버리고 명예를 버리고 물질에 잡혔든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온갖 욕심을 버려야합니다. 욕심이 무엇입니까? 죄의 근원이 바로 욕심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움켜쥐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채워 주시고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채워 주시기 때문에 참 자유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적인 것을 모두 버리고 비울 때에 비로소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신령한 것들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적인 욕심이 영의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세상적인 욕심의 비늘이 그의 눈에서 벗겨졌을 때 신령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속에 있는 욕심과 신앙의 몸부림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며, 자신을 위해 움켜쥐고 있든 세상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때, 신령한 것이 보이고, 들리며, 얻게 될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든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림으로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한 우리는 모두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세상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움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 지난날의 상처를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온전하게된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갑시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이미 임하셨습니다. 이웃과 로토루아와 세계를 향해 일어나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님의 마지막 추수의 일꾼으로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 아멘 --
로토루아 갈릴리 교회 초대목사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