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목사님 설교문] 구원의 문
by 김진영목사님 | 17.04.18 10:17 | 7,628 hit




눅 : 13 ; 22-30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자인지 알지 못하리라 하리니25/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28/ 너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 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 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구원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고 구원의 길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써 하나님의 언약백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을 받게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그와 비슷한 착각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숀 스쿨에서 성경공부를 했으며, 차풀 시간에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일정수준 이상의 성경공부를 했기 때문에, 성경지식이 많으니까, 믿음의 연조가 길기 때문에, 세상의 법도 잘 지키고 남을 동정하고 선한 일을 많이 했으니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자기 자신은 예수를 믿지 않지만 부인이 교회에 열심을 다하기 때문에 자기도 부인을 따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성경 말씀은 과연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3)절 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행16;30-31)절의 말씀은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나자신의 죄 값도 모두 치루 셨음을 믿으며, 나를 대신한 예수님의 죽음을 나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죄와 자범죄 등,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았든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겠다는 결단과 실천이 있어야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상태로 지금까지 무덤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셔서 지금 이 시간에도 구원 받은 자의 심령 가운데 성령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믿는 자 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갈 2;20) 절 말씀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구원의 문’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을 묵상하며 함께 은혜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1). 구원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뉴질랜드에는 곳곳에 마라에 라고 하는 마오리족의 공회당이 있습니다. 마라에 건물의 안과 밖에는 사람모양의 많은 나무조각들이 있습니다. 크기도 다양하며 타투도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손가락이 거의 3개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간혹 손가락이 네 개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3개의 손가락은 무엇을 뜻하는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뜻 한다고 했습니다. 출생(Birth) 과 삶(Living), 그리고 죽음(Death) 을 뜻 한다고 했습니다. 엄지 까지 있는 것은 영적인 삶을 뜻 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육신은 출생과 삶과 죽음으로 연결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동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이세 가지의 연결 순서를 바꿀 수도 없고 빼놓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삶과 죽음사이에 중간 기간이나 중간 상태도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는 길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마7;13-14) 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넓은 문은 세상 연락속 에서 자신을 즐기며 육신의 안일과 평안을 얻고자 하며 자기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길입니다. 


좁은 문은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어렵고 힘든 십자가의 길입니다. 찾는 이가 적다는 것은 구원 받은 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넓은 문을 택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자랑과 즐거움을 버리지 못해 하나님 우선적인 삶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이 우선적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일에는 관심이 많아 적극적으로 열심히 동참하면서도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헌신하고,봉사하고, 구제하는 일에는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도 넓은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주님을 뒤따르는 믿음의 길은 좁고 험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끝까지 인내하며, 구원의 문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2). 구원의 문은 고난의 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눅 13;2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으며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문은 좁고, 길이 협착 하다 는 것은 고난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은 좁은 문이며 고난의 문입니다. (행14;22)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 세상의 삶속에서 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성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요즘 T.V에 보면 매 4년마다 개최되는 올림픽에 출전을 위해서 각 나라의 대표 팀은 힘들고 어려운 강훈련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16년 동안 공부를 하고 훈련받는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직장을 얻어 일하게 되었다고 해도 또다시 10여 년간의 집념과 노력과 수고의 고난을 겪어야 성공의 가능성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땐 가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게 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고통과 수고가 없이는 성공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토록 질병과 고통과 눈물이 없는 평화와 기쁨만이 있는 영원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출 7장) 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맨 처음 공격한 성은 여리고 성이였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을 의지 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한 말씀만을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견고한 여리고 성을 함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조그만 아이 성을 공격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실패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리고 성에서 승리 한 다음, 금과 은덩어리, 그리고 외투 한 벌을 도적질한 아간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범죄 한 아간과 훔친 물건과 그의 모든 자녀들과 우양과 나귀, 그리고 그에게 속한 모든것을 아골 골짜기에 몰아넣고 돌로 치고 불사르고 돌무더기를 만들었습니다. 아간과 그의 모든 것을 멸하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 성을 점령 할 수가 있었습니다. 계속하서 승리하게 되어 끝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모두 정복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아골‘ 은 아람 말이며 괴로움, 고통 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40년 동안 광야에서 동고동락을 같이 하든 아간과 그의 가족과 소유하고 있든 모든 가족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 때문에 돌로 쳐 죽이고 돌무더기를 만드는 뼈아픈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괴로움의 아골 골짜기라는 고난의 문을 통과 했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 할 수가 있었든 것입니다. 우리들도 눈물과 괴로움의 험하고 좁은 골짜기인 세상 유혹을 물리치고 교만의 자아를 벗어버리는 고난의 문을 통과해야 천국 문을 바라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며 주변국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고통 당하든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일곱 아들 중 막내로써 양치는 목동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친히 택하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을 붓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 시기하여 죽이려고 군사를 동원하여 찾아다녔기 때문에 다윗은 10년 동안이나 목숨을 걸고 도망 다녀야 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다음에도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가슴 아픈 고난을 겪게 되었으며 다윗은 고난의 눈물 골짜기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수없이 지났습니다. 고난없이는 영광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 없이는 생명의 면류관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손해 보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지 말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 내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욕심을 내지 말라, 술 취하지 말라, 정죄 하지 말라. 세상 연락을 따르지 말라. 십계명에도 하지 말라는 것이8가지나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많이 있습니까?.


고난이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네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친히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 으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실천이 기독교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자 들은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주님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눈물과 고난의 길이라고 해도 끝까지 견디며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큰복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구원의 문은 어느 날 갑자기 굳게 닫혀 질 것입니다.


(눅 13;25) 절에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의문은 언제까지나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계 3;7) 절 말씀에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 고 하셨습니다. 구원의 문은 주님에의해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으며 아무도 들어 갈 수가 없는 문입니다. 노아 시대에 죄로 가득 찬 이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킨다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믿고 열려 있는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여덟 식구는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방주의 문이 한번 닫힌 후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홍수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먹고 마시며 세상연락을 즐기다가 40일동안 계속되는 홍수로 온 마을과 산천이 물에 잠겼을 때 그들은 방주의 주위에 몰려와 방주를 두드리며 문을 열어 달라고 아우성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번 닫은 방주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홍수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눅 26-27) 절 말씀에 ‘그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저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 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우리가 주님께서 머리되시는 교회에 나와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해도 좁은 문인 고난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평탄한 넓은 문으로 들어간다면 주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며 결국은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하나였든 가룟 유다는 주님께서 잡히시든 날 밤에도 태연하게 최후의 만찬에 참여하여 같은 식탁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나 끝내는 주님을 배신하게 되어 유다 앞에 구원의 문은 굳게 닫혀있음으로 그는 구원 받지 못 한체 자기 스스로 목을 메달아 죽는 참혹한 최후를 마치고 영원한 멸망인 지옥 불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어느 날 갑자기 구원의 문이 굳게 닫히기 전에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이 시간이 결정을 해야 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과연 어느 문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는 좁은 문 입니까? 아니면 세상과 타협하며 육신의 향락과 안일을 누리며 살아가는 영원한 멸망으로 통하는 넓은 문 입니까? 아직도 구원의 문인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넓은 문에 미련이 남아있어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천국으로 향하는 구원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고난의 문입니다.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 문입니다. 구원의 문이 하나님에 의해 닫히기 전에 교만과 욕심과 위선과 안일로 인한 모든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아 구원받고 성령님의 역사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는 마지막 날 주님의 초청으로 천국잔치에 참여하여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 아멘 --


로토루아 갈릴리 교회 초대목사 김진영